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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미술 양식 로코코시대

 

로코코미술의 대표적인 작품

로코코 미술 로코코를 대표하는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787년에 그려진 [그네]라는 작품입니다. 18세기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스캔들적인 요소로도 유명합니다. 샤를르 콜레라는 작가가 1767년 10월 2일 화가 가브리엘 두와 양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그네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원래 이 그림은 두와 양이라는 화가에게 주문되었으나, 실제로 그림을 그린 사람은 프라고나르였습니다. 주문자는 궁전에 출입할 만큼 신분이 높았지만, 그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주문자는 그네를 미는 성직자, 여인의 다리를 볼 수 있는 자신, 그네를 타는 정부의 모습 등이 함께 담기기를 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그림 속에는 젊은 시절 샤르댕과 프랑수아 부셰에게서 수련을 받은 프라고나르의 뛰어난 그림 기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그림은 주문자가 원하는 내용이 에로틱하고 방탕하여 감각적인 현실의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경은 깊은 숲으로 설정되어 있어 판타지적인 느낌을 주며,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림의 중앙에는 그네를 타고 우아하게 높이 올라가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어두운 숲 속에서 화려하게 그네를 타고 있는 이 여인은 마치 꽃이 피어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화사한 레이스가 달린 치마는 여성미를 한층 더 강조합니다. 한쪽 신발은 벗겨져 허공에 날아가고 있으며, 왼쪽에는 유명한 조각가 에티엔 모리스 팔코네의 큐피드상이 있습니다. '쉿' 하고 침묵을 요구하는 큐피드는 이들 사이에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네를 미는 남자는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며, 젊은 귀족의 시선은 여인을 향하고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네를 타는 여인의 모습은 연애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소재입니다. 춘향전에서도 이몽룡이 첫눈에 춘향에게 반했던 순간도 그네를 타던 모습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작품에도 수줍은 시골 처녀가 설레고 순수한 마음을 시작할 때 그네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20~21세기의 사람들은 [그네] 그림을 보며 왠지 모르게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멍하게 바라보게 된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녀의 화사하고 아름다운 핑크색 레이스 드레스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 금전적으로 고민이 많은 사람, 인간관계와 결혼 생활에 지친 사람, 건강이 걱정인 사람 모두 이 그림을 통해 잠시라도 걱정과 근심을 떨쳐내고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로코코

로코코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예술 양식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하며, rocaille(조개 장식, 자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로코코 양식은 바로크 시대의 화려한 취향을 이어받아 발전했으며, 주로 섬세한 장식과 화려한 색채, 건축의 유행을 특징으로 합니다. 바로크 양식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세련되게 변형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로코코 예술은 왕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유한 부르주아와 귀족들이 즐겼던 예술입니다.

 

19세기 프랑스의 귀족들은 유희적이고 변덕스러운 매력,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을 가진 사교계 예술을 추구했습니다. 아늑하거나 에로틱한 주제와 감미로운 요소들을 강조하여, 귀족들의 주거 공간을 장식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개인의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소형 예술품들이 많이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1840년대부터 '로코코'라는 단어가 서양 예술사에서 전문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학술원에서 '로코코'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기록이 있습니다. 로코코는 바로크나 르네상스처럼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사조로 보기 어렵습니다. 18세기에 유행했지만, 고전주의, 낭만주의, 바로크 시대와 함께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로코코 시대의 건축 양식

로코코 건축 양식은 바로크 건축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8세기에 발전한 이 양식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독일과 영국 등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루이 14세와 그의 귀족들을 위해 발전한 프랑스의 바로크 건축은 루이 14세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루이 14세가 사망하기 직전부터 로코코 양식의 조짐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궁전에서 생활하던 귀족들과 왕족들은 그들의 장엄하고 의식적인 생활에 지루함을 느꼈고, 개인적인 공간을 원했습니다. 이에 따라 궁전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회생활이 변화하였고, 친밀한 교제와 개인 간의 관계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프라이빗한 공간을 중시하는 문화 덕분에 로코코 시대의 건축은 실내 장식에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실내 장식과 조개껍질로 꾸민 조각 장식이 로코코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로코코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는 상수시 궁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