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마리라 델 피에로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건축물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이 대성당은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이 성당이 처음 완공되었을 때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중 하나였습니다. 피렌체의 경제적, 정치적 중요성을 상징하는 이 건축물은 약 3만 명의 신도들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1296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436년에 완공된 이 대성당은 붉은색, 녹색, 흰색의 화려한 대리석 파사드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그리고 르네상스 거장들의 조각 작품과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돔으로 인해 큰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초기 건축을 담당했던 아르눌프 디 캄비오 이후 여러 건축가들이 공사를 이어갔으며, 1331년에는 작업을 총괄하기 위한 협회가 설립되었습니다. 1334년에는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조토가 총책임자가 되었고, 그의 조수인 안드레아 피사노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조토가 1337년에 사망한 후 여러 건축가들이 감독을 맡았으며, 원래 설계보다 더 크게 돔을 확장하기 위해 1418년에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이 공모전에서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선정되어 1436년에 최종 완성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기 기간
르네상스는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유럽에서 일어났던 문화 혁신 운동 또는 문예 부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는 유럽 문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중세와 근세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으며, 과학 혁명의 기초가 마련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르네상스는 14세기부터 16세기 말까지 유럽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재발견하고 재평가하는 예술 및 문화 전반의 운동을 의미합니다. 이 운동은 초기 로마와 그리스 문명을 다시 수용하며,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강조하는 정신을 계승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르네상스는 특정 시대의 정신 운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오랜 중세 시대가 끝나고, 근세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르네상스 운동과 그 정신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짧은 시간 안에 알프스 산맥을 넘어 유럽 여러 나라에 퍼졌습니다. 대표적인 국가로는 스페인, 독일,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는 르네상스 운동의 영향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르네상스의 탄생 일화
'르네상스'라는 용어는 19세기 이후에 만들어졌으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전통적인 시각에서는 이탈리아가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여겨졌으며, 15세기부터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이 시대에는 아랍의 지식을 받아들이고, 경험을 중시하는 태도가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지식 전파 속도가 빨라졌으며, 예술가들은 새로운 기법과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유럽이 암흑기를 벗어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르네상스는 대항해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경제 성장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근대의 시작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르네상스는 특정 지역이나 시간으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점차 확산되었으며, 중세의 끝을 알리는 명확한 시점이나 장소는 불분명합니다. 이탈리아 중부의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시작점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탈리아는 비잔틴 세계와의 접촉을 유지하고 이슬람 세계와도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가장 잘 나타내는 분야는 미술입니다. 이 시기에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이 등장하여 인간의 아름다운 신체와 자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건축 또한 르네상스 시기에 급격히 발전했으며, 성 베드로 성당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에라스뮈스는 '우신예찬'에서 교회의 성직자와 허식, 타락을 풍자하며, 초기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그 당시 인류의 무지를 다시 일깨우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고전 학문을 되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당시 인문주의자들은 이러한 생각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르네상스 시대는 단순히 라틴 학문을 부흥시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과 창의성,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습니다. 부르크하르트는 1860년에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를 발표하면서 르네상스를 하나의 시대적 개념으로 명확히 정의했습니다. 그의 해석은 현재까지도 르네상스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부르크하르트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에서 중세와 르네상스를 완전히 대립적인 시대로 보았습니다. 그는 근세가 중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고대에서 이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중세 시대를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이 시기를 암흑기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주장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르네상스의 기원이 고대가 아닌 중세에 있다고 주장하며, 르네상스를 근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