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인들의 전투
마야인들은 전쟁을 매우 중시했다. 마야 지도자들은 전투 능력을 철저히 평가받았고, 전쟁에서 죽인 적의 머리를 허리에 차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초기의 모습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포로를 잡으면 그들을 모욕했다. 후기에는 왕들이 직접 전투에 참여했으며,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왕은 모욕, 처형, 고문을 당하는 일이 흔했다. 스페인 학자들이 마야 문명을 연구한 결과, 왕의 위엄이 추락하는 순간을 책에 상세히 기록하여 후대에 전했다.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은 왕을 잃는 것과 같았다. 패배한 국가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몇몇 도시는 완전히 사라지거나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승리한 국가는 패배한 국가의 왕족, 지도자, 귀족, 신관들을 제물로 바치거나 노예로 삼았다. 패배한 국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자존심은 매년 승리한 국가에 공물을 바치는 것이었다.
전쟁에서 사용했던 무기
문명의 초기 단계에서 마야인들은 '아틀라틀'이라는 무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 무기는 테오티우아칸 지역에서 마야 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던지는 창의 일종이다. 아틀라틀은 약 0.5m 길이로 짧았으며, 끝이 뾰족한 날이 달려 있었다. 창날에는 막대기가 부착되어 있어 손으로 던지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빠르게 던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무기를 조사한 결과, 마야인들의 주요 무기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반 시민들은 전쟁 시 바람총을 사용했으며, 이는 평소에는 사냥 도구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활과 화살도 마야 문명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마야의 용맹한 전사들은 활과 화살을 선호하지 않았다고 한다. 활과 화살은 잉카 문명의 후기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또한, 나무로 만든 단단한 손잡이의 검도 사용되었다. 소금물에 적신 솜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겉보기에는 별로일지 몰라도 내구성과 성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외부 문명을 받아들인 적이 없는 이들이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스페인 군인들의 강철 갑옷과 비슷한 성능을 자랑했다. 나무나 동물 가죽으로 방패를 만들었으며, 단순히 성능 좋은 방패를 원한 것이 아니라 황금이나 새의 깃털 등으로 무기와 방어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고 한다.
마야 문명 기본 지식
마야 문명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 주요 시기를 알아야 한다: 선고전기, 고전기, 후고전기. 선고전기는 기원전 약 2000년부터 기원후 250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이 시기 동안 엘 미라도르(El Mirador) 같은 저지대 대도시를 중심으로 여러 인프라가 형성되었다. 이때 마야 문화의 기초가 마련되었으며, 고전기는 250년부터 9세기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칼라크물과 티칼 같은 주요 도시 국가들이 번성하며 서로 경쟁하고 동맹을 맺었다. 이러한 상호 작용은 마야 문명의 화려한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전기 동안 칼라크물, 티칼, 우슈말, 팔렌케, 우아삭툰, 코판 등의 대도시가 번성했고, 인구는 5000명에서 10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로 인해 돌로 만든 대규모 건축물과 황금비율의 피라미드가 건설되었다.
21세기에는 이 문화권의 국가들이 온두라스, 벨리즈, 엘살바도르 북부, 과테말라, 멕시코 동남부의 5개 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기원전 약 2000년부터 17세기까지 약 3800년 동안 번영했던 거대한 문명이다. 현재도 남미는 이들의 독특하고 활기찬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야 문명은 광범위한 벌목과 과도한 농경지 개편으로 인해 환경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후 변화와 자연환경의 여러 요인들이 겹치면서 많은 도시국가들이 서서히 몰락했다. 생존한 시민들은 북부 지방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도시를 세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성기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마야판과 치첸 이트사 같은 대도시들이 마야 문명을 계승하려 했지만, 초기의 영광을 되찾지는 못했다고 전해진다.
남미 문명에 대해 질문하면 많은 사람들이 정글 속 고대 유적이나 피라미드를 떠올린다. 이는 바로 마야 문명이다. 마야 문명은 항상 신비로웠지만,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과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마야 문명의 주요 활동지는 유타칸 반도의 정글이었다. 반면, 아즈텍과 잉카는 사막이나 고원 지대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정글 하면 마야가 떠오르는 것이 맞다.
결국 13세기에 최후의 대도시인 마야판마저 멸망했다. 중소 규모의 도시들은 문화를 계승하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1500년대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들이 이 지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마야 문명은 거의 멸망한 상태였다고 한다. 마지막 중소 규모 도시인 노즈페텐마저 스페인 군대에 패배하며 마야 문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들의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다. 마야어와 마야인들은 스페인과 멕시코의 지배를 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마야 문명의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된 유적지에는 온두라스의 코판, 멕시코의 팔렌케, 캄페체의 칼라크물, 치첸 이트사, 욱스말, 과테말라의 티칼 국립공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