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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하는 알파벳의 시초? 메소포타미아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하여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이 문명을 모른다면 초등학교부터 다시 공부해야 할 만큼 중요한 문명이다. 오늘은 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이 문명은 기원전 4세기 후반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부터 지리학, 역사, 고고학적 명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중동 지역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주변에 위치했던 문명이다. 현재 이 지역은 이라크가 차지하고 있으며, 명칭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메소'는 '중간', '포타'는 '강', '미아'는 '도시'를 의미한다. 따라서 '두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뜻을 가지며, 이 문명은 두 강이 제공하는 자연환경 덕분에 비옥한 토양을 가질 수 있었고, 기원전 약 6,000년 전부터 구석기 시대의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초기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지리는 매우 개방적이어서 교섭이 빈번했고, 이는 정치와 문화의 복잡성을 초래했다. 반면에 이집트 문명은 폐쇄적이고 독자적으로 운영되었다. 개방적인 환경 덕분에 외세의 침략을 받기 쉬운 조건을 갖추었고 실제로 침입이 잦았다. 이 문명의 문화는 매우 능동적이고 개방적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주변 국가들에게 문화적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후세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들은 당신도 한두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현대 이라크와 이란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들도 있다. 아시리아의 도시, 아모리인의 도시, 아카드 제국의 도시, 수메르의 도시, 엘람의 도시, 바비로니아의 도시 등이 있다.

 

현대 알파벳의 기원

수메르인들은 처음에 상형문자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상형문자는 사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산을 표현하고 싶다면 산의 형상을 닮은 그림을 그리면 된다. 이는 생각보다 간단한 원리이다. 새를 나타내려면 새와 유사한 모양을 그리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인류는 그림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쐐기 모양으로 된 '설형문자'를 개발했다. 이 설형문자를 이용해 그들의 역사와 수많은 영웅, 전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뼈나 갈대 줄기를 펜으로 사용하여 점토판에 새긴 후 불에 구워 보존했다고 한다. 나중에, 페니키아인들은 이 설형문자를 단순화시켰고, 간단해진 설형문자에 모음을 첨가하여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알파벳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의 개념도 이들이 발명했다. 1분을 60초로 나누는 60진법, 한 시간을 60분, 하루를 24시간으로, 1년을 12달로 나누는 태음력 등 모든 것이 수메르인들이 달의 운행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다. 원을 360도로 나눈 것도 이들의 발명품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에 의해 멸망하였고, 2,500년 동안 서남아시아의 중심을 차지했던 문명이 막을 내렸다. 학창 시절에는 대략 4대 문명으로만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경제

이 문명은 화폐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 대신 물물교환이 주된 거래 방식이었으며, 수메르 문명을 기반으로 아카드와 아무르인들의 문명도 발전했다. 이들의 정치적 사회 구조는 다른 문명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회는 노예, 평민, 귀족으로 나뉘었으며, 그 상위에는 고위 성직자, 고위 관료, 왕족, 그리고 왕 계급이 있었다. 고위 성직자들과 귀족들은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정치권에서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높은 신분을 유지했다. 평민들도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었으며, 토지를 소유하거나 처분할 수도 있었다. 흙수저에서 금수저로의 신분 상승이 가능했다니 놀랍다. 노예는 태어날 때부터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 포로, 범죄자, 채무자, 외지인들이 주로 노예가 되었으며, 이들도 평생 노예가 아닌 3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다. 이 기간 동안 주인에게 복종해야 했으나, 이후에는 일반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는데, 이는 이들의 종교와 관련이 있다. 이들은 현세적 다신교를 믿었으며,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의미로 점성술도 발전했다고 한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자연환경은 외세의 잦은 침략을 불러왔고, 불규칙하고 빈번한 범람은 큰 재앙을 초래했다. 이러한 자연환경 때문에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세계관은 자연의 혜택보다는 재앙을 극복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보다는 현세적인 삶에 집중했으며, 비관적인 특성이 강하고 문화적으로도 우울한 면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모두 자연환경과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 때문이며, 이들의 가치관과 신에 대한 생각은 '길가메시 서사시' 등에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