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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들의 경기장 콜로세움

 

콜로세움이란 명칭의 유래

영어로 표기할 때 Colosseum과 Coliseum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이 두 단어의 발음은 "컬러시엄"으로 같다. 영어권에서도 이 문제는 꽤 헷갈리는 주제여서 관련 논문도 있을 정도다. 일반적으로 야외 경기장은 Coliseum, 로마에 있는 것은 Colosseum으로 구분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많다. 한국에서는 Colosseum의 인지도가 높아 Coliseum이라는 표기가 거의 사용되지 않아서, Colosseum이든 Coliseum이든 모두 콜로세움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고유명사는 예외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후대에 붙여진 것이다. 원래 이름은 건설자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가문 이름을 딴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이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이 플라비우스 원형극장 근처에 있던 거대한 네로 황제의 동상(콜로서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콜로서스 동상은 건립 당시부터 평판이 좋지 않았으며, 네로 황제가 권좌에서 물러난 후에는 머리 부분이 태양신의 얼굴로 바뀌었다. 이후 동상은 구리로 재활용하기 위해 완전히 철거되었지만,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남아 원형극장을 지칭하게 되었다.

 

콜로세움의 특징

원형 경기장이 처음 완공되었을 때의 규모는 현재 남아있는 일부보다 훨씬 컸다고 전해진다. 외벽의 높이는 52미터에 이르렀으며, 네로 황제의 사유 궁전에서 가져온 다양한 조각상들이 외벽 아치 안쪽에 배치되었다. 외벽의 처마와 기둥은 각각 1층, 2층, 3층이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으로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베수비오 화산에서 나오는 화산재를 활용한 콘크리트와 무게를 분산시키는 아치형 구조를 사용해, 상대적으로 적은 자재로 거대한 건축물을 세울 수 있었다. 최상층에는 나무 기둥이 설치되어 있어, 햇볕이 강한 날에는 오늘날의 돔구장처럼 천으로 된 차양막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구조였다.

 

관중석은 신분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구분되어 있었고, 나무조각이나 흙으로 구운 입장권에 적힌 번호가 있는 출입구로만 드나들 수 있어 수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던 당시의 초대형 경기장임에도 불구하고 30분이면 모두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오랜 내전 끝에 파탄에 이른 로마의 상황에서 베스파시아누스가 어떻게 이런 대규모 사업을 벌였는지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콜로세움을 건설하는 데 소요된 재정은 대부분 그의 아들인 티투스가 예루살렘에서 약탈한 보물들로 충당했다고 한다. 만약 시민들에게 세금을 걷어 지었다면 당연히 반발이 있었겠지만, 외국에서 가져온 보물과 네로의 호화로운 궁전을 해체한 자재로 건축을 진행했기 때문에 시민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티투스는 콜로세움이 완공되자 무려 100일 동안 축제를 열었으며, 이는 플라비우스 왕조의 업적을 홍보하고 베수비오 화산 폭발, 로마 화재, 페스트 확산 등으로 불안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네로 황제의 개인 궁전이 있던 자리에 시민들을 위한 유흥 시설인 경기장을 지어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현대인들은 정대 상상할 수 없는 컨텐츠

현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일 수 있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수간 쇼"라는 이색적인 볼거리가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이 쇼에서는 아름다운 소년이나 소녀들이 동물들과 성행위를 하는 모습이 관중들 앞에서 펼쳐졌다고 한다. 이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고대 로마에서는 여성들이 성적인 목적으로 뱀을 키웠다는 기록도 남아 있을 정도였다. 물론,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검투를 즐기던 로마인들에게는 이러한 쇼가 지금의 스트립쇼와 비슷한 개념이었을지도 모른다.

 

맹수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동물들을 어느 정도 길들이고 훈련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하고 능력 있는 인물로는 로마 역사상 최고의 베스티아리로 꼽히는 카포포루스(Carpophorus)가 있다. 카포포루스는 기원후 1세기 경의 인물로, 원래는 가난한 하층민 계급에서 태어났다. 경기장에서 불타는 짚단으로 곰을 물리친 일화로 유명해졌고, 이후 타고난 재능으로 사자, 여우, 코끼리, 표범 등 다양한 사나운 동물들과 싸우는 법을 익혔다. 그의 재능은 매우 뛰어나 맨손으로 야수들의 목을 꺾어 죽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한 경기에서 20마리가 넘는 맹수들을 무기도 없이 모두 죽였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카포포루스의 인기는 엄청나서 시인 마르티알리스가 그를 찬양하는 시를 쓸 정도였으며, 그가 경기장에 등장하면 25만 석의 경기장이 가득 찼다고 한다.

 

수간 쇼가 로마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향이 컸다. 주신 제우스는 여러 동물의 형상을 하고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는데, 이를 모방한 수간 쇼가 공공연하게 펼쳐졌다. 행사 주최자들은 이 공연이 단순한 여흥거리가 아니라 제우스를 경배하는 방식이라고 포장해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군중들은 이에 열광했고, 수간 쇼는 고대 로마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행사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