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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탄생에 관하여

 

종교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종교적 신념의 기원을 명확히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종교'라는 개념 자체가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발견된 매장 의식 등과 같은 증거를 통해, 이러한 신념 체계가 수천 년 전부터 점진적으로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비록 초기의 이러한 증거들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종교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이는 종교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해왔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류는 미지의 현상을 이해하고, 도덕적 규범을 세우기 위해 신념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문자가 없던 시절, 번개나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 현상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했다. 또한 야생 동물의 공격이나 적의 침입 같은 사건도 제한된 정보로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초래했다. 신화적 신앙이 등장하면서 인류는 새로운 문명과 만나 그것을 신념의 형태로 발전시켰다. 이를 통해 인류는 자연 현상을 해석하고, 구전으로 전해진 지식을 도덕적 가치와 결합하여 공동체의 유지에 필요한 지식을 세대 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종교가 처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직 없으며, 종교는 인간에게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는 주로 세 가지 경향으로 분류된다. 1)종교를 가진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에 유리했던 점, 2)집단 생존에 도움이 되는 특성이 종교의 생성을 유도한 점, 3)신념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전달되면서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 점. 이 세 가지 모두 아직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동물 세계에서도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종들 사이에서 그들만의 문화가 발견되곤 한다. 예를 들어, 벌허스 프레더릭 스키너의 비둘기 실험은 원시적인 미신의 형태를 발견한 사례 중 하나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관관계의 오해가 원시적 미신과 같은 메커니즘을 가질 수 있지만, 인간의 복잡한 종교로 발전하는 과정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이며 많은 부분이 미해결 상태라는 점이다.

 

과연 유교도 종교인가?

유교를 '종교'로 분류하는 것은 그 복잡한 역사적 특성 때문에 쉽지 않다. 유교에는 제사와 같은 '종교적 행위'가 포함되어 있지만,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신념을 상대적으로 덜 강조하기 때문에 철학적 체계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유교를 종교로 분류하려는 학문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유교는 학문적 성격이 강하므로 철학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의견이 대중 사이에서 종종 나타난다. 유교를 전통적으로 '최고의 교훈'으로 여기는 유학자들의 관점과는 상반되는 이러한 견해는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든다.

 

이와 같은 논쟁은 16세기와 17세기 가톨릭 내에서 발생한 '전례 논쟁'에서도 나타난다. 마테오 리치 등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 문화에 깊이 적응하며 유교를 철학으로 보고 그리스도교와의 호환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조상 제사 문제로 인해, 교황청은 예수회의 접근과 다른 입장을 취했고, 결국 조상 제사 금지령이 내려지며 강희제와 옹정제는 기독교 선교 활동을 금지했다.

 

이 사례들은 '종교'의 정의가 문화적 요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서구의 '종교' 개념이 중국에 도입된 후, 강유위가 유학을 서구적 관점에서 공교로 재해석하려 한 시도와 중화인민공화국이 공자학원을 통해 유교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현상 등은 이러한 정의의 현대적 적용 사례를 잘 보여준다.

 

근대 유럽의 종교적 상황

유럽 대륙에서 신앙 갈등이 발생한 이후, 여러 예배 방식의 다양화와 신앙 내 분열을 극복하고, 신앙 간 오해로 발생한 갈등을 반성하면서, 사람들은 신앙의 차이 속에서 공통된 가치를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과 신의 관계를 다루는 다양한 형식은 현대의 신앙 정의로 나타났으며, 이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자연 신앙과 특정한 계시에 기반한 문화적 맥락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자연 신앙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보편적인 신앙이라는 개념입니다. 초자연적인 계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영국에서는 자연 신앙을 중심으로 한 데이즘이 발전했습니다. 체버리의 제1대 남작인 에드워드 허버트는 진정한 신앙의 다섯 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랠프 커드워스는 모든 신앙이 궁극적으로는 윤리적인 일신론에 기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존 로크는 이성만으로 덕을 이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며, 특정 계시가 자연 신앙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매튜 틴들은 자연 신앙이 이미 모든 윤리적 의무를 포함하고 있으며, 특별 계시와 자연 신앙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전달한다고 보았습니다. 틴들은 모든 특별 계시가 이성적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존 트렌차드는 인간이 타고난 신성함을 강조하며, 이 신성함이 다양한 신앙 전통에서 일신론으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요한 잘로모 젬러는 성경과 자연 신앙의 구별을 통해 두 가지 신앙 형태를 제안했습니다: 공적-역사적 신앙은 역사적으로 전해진 성경, 교리, 신조에 기반한 신앙입니다. 사적-윤리적 신앙은 개인의 신앙적 확신에 근거해, 보편적 윤리적-정신적 진리를 탐구하는 신앙입니다. 젬러는 윤리적 신앙을 가진 사람이 더 성숙한 신앙인이라고 여겼으나, 이것이 역사적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후,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는 신이나 윤리와 분리된 신앙 개념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종교의 어원

'종교'라는 단어는 한문 문화권에서 불교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으며, 과거에는 '가장 우수한 가르침'으로 해석되었다.

서양의 "religio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religio"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근대 일본 학자들에 의해 "宗敎"로 번역되었고, 이로 인해 근대 이후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religion"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키케로는 'religio'가 '다시 생각하다', '세심하게 조사하다'는 의미의 'relegere'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신에 대한 숭배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시 고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신학자 락탄티우스는 'religio'가 '묶다'라는 뜻의 'religare'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이는 인류가 신에 대해 어떤 의무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의무감에 의해 신과 연결된다는 관점을 반영한다.

 

이러한 어원적 배경을 바탕으로 '종교'의 정의를 탐구할 때, 한자어 "宗敎"와 라틴어 "religio", 그리고 현재의 "종교(religion)"라는 단어 사이의 의미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宗敎"는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가치 판단을 내포하고 있으며, 키케로는 현재 '종교'로 통칭되는 현상을 "religio"와 "superstitio"로 구분하여 설명했다는 점에서, 현대적 의미의 '종교'와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